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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단 가입, 상생과 살생 사이

Mr. Han 2008. 11. 18. 13:37

대주단 가입, 상생과 살생 사이

머니투데이 | 기사입력 2008.11.18 13:00

 


[머니투데이 길진홍기자][[thebell note]건설·금융 모두 살 수 있는 길 찾아야·]

건설사 대주단 협약 가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금융당국이 상생론을 펼치며 대주단 협약 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이를 살생부로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또 지난 17일로 예정된 건설사 대주단 협약 가입 1차 마감시한을 백지화하면서 시장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 상생(相生)

상생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음양오행설에서 상생은 금(金)은 수(水)와, 수는 목(木)과, 목은 화(火)와, 화는 토(土)와, 토는 금(金)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대주단 협약 활성화를 위해 상생론을 들고 나왔다. 건설사들이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면 1년간 채무를 연장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정부는 또 건설사들이 주채권은행의 심사를 거쳐 신규 자금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 말대로라면 대주단 협약 가입은 건설사들을 위기에서 구해줄 동아줄과 다름없다.

금융사에게도 이익은 돌아간다. 당장 자기자본비율(BIS) 방어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은 건설사 부도에 따른 연쇄 부실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대주단 협약은 건설사들의 유동성 지원은 물론 금융시스템 부실의 '트리거(방아쇠)'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상생론의 요지다.

# 살생(殺生)

건설사들은 대주단 협약 자체를 살생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주단 협약은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조정이 뒤따르는 일종의 기업회생 프로그램이다. 대주단 협약 안에서도 재기가 불가능한 건설사들은 퇴출이 불가피하다.

다행히 유동성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다 해도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은행들의 경영권 간섭을 각오해야 한다. 주택 사업을 통한 수입은 곧바로 주채권은행의 원리금으로 들어가는 게 수순이다. 성장을 위한 재투자는 그 다음 일이다.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건설사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금융시장 경색이 어느 순간 자금 줄을 막을지 모를 일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러브콜을 거부한 채 배짱을 부릴 건설사는 많지 않다.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가능하더라도 대주단 협약에 들어간다면 채권단 관리를 피할 길이 없다.

# 원점(原點)

대주단 협약 가입을 독려하던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17일 금융당국은 당일 예정된 1차 대주단 협약 가입 마감시한을 운용이 종료되는 2010년 2월 말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건설사들의 대주단 협약 가입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셈이다.

그 덕에 지난주 공문을 발송해 건설사 단체가입을 추진한 은행연합회는 '양치기 소년'이 돼버렸다. 시장 혼란이 커지자 정부는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18일 설명회를 열기로 하는 등 뒤늦은 수습에 나서고 있다.

엎친 데 덮인 격으로 원화 유동성 악화를 우려한 은행들의 호응도 소극적이다. 건설사들의 부채를 만기 연장할 경우 은행의 여신부담은 그만큼 늘어난다. 한두 건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숫자가 늘어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와 금융권 입장에서는 당장 그 많은 건설사들이 대주단 협약에 들어오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다. 18일 열리는 은행연합회 대주단 협약 설명회가 건설사와 금융사가 모두 살 수 있는 상생의 접점을 찾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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