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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알려 준 가장 값진 교훈은 무엇인가?

Mr. Han 2008. 12. 4. 10:25

미네르바가 알려 준 가장 값진 교훈은 무엇인가? 


미네르바는 이곳 아고라 경방에다 수십 편의 글을 올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유익한 도움을 주었다. 물론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그의 행동으로 인해 더 많은 이익을 챙기지 못한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었겠지만 ...

 

미네르바의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손실을 미리 예방하기도 했었고, 권력층과 기득권 세력들에 대한 가슴 속에 맺힌 울분을 대리 폭발시키기고 했었다. 그리고 미네르바의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좌절과 절망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고,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때문에 많은 네티즌들이 미네르바가 글을 썼던 이곳 아고라 경방을 찾아와서, 미네르바 뿐 만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미네르바를 통해서 얻었던 것과 비슷한 유익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네티즌들 가운데는, 마치 보석을 캐내려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정말 가치 있고 소중한 글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렇다면 미네르바가 이곳 경방에다 글을 씀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준 ‘가장 값진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왜 배우려고 애쓰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미네르바가 남긴 값진 교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좀 더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질문은,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 왜 배워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보면서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문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으며, 또 외면해서도 안 되는 관심분야다. 사람들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아무래도 괜찮다’는 식으로 살아가지 않는 한,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경제문제는 삶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항 일수밖에 없다.

 

경제는 정치나 사회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이들 분야는 상호 영향을 주면서 함께 악화 되어 가거나, 동반 회복 되거나 한다. 오바마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어찌 보면 작금(昨今)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발과,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배경에 집착하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이 땅에서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경제문제가 정치와 별개가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도 뉴라이트나 조중동과 같은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의도적으로 각종 정보를 왜곡시켜 국민들을 농락하고 있다. 이들 기득권 세력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가면서, 지난 10년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정보를 왜곡시켜 국민들을 마음껏 농락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철저하게 기만당한 국민들은, 지난 10년보다 더 뛰어난 경제적 성과를 올리라고 주문하면서, “자칭” ‘경제 대통령’을 주장하는 MB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실체적 진실에 무지했던 국민들은, 코스피 3000과 ‘747’이란 숫자를 내세우며 경제를 살리겠다고(?) 국민들을 현혹한 MB의 손을 별다른 망설임 없이 들어주고 말았다.

 

이처럼 현상 그 자체이든지 아니면 그 현상이 왜곡되었든지 간에, 경제문제는 정치판 자체를 뒤집어 엎어버릴 수 있으며, 사회의 기본 틀마저도 바꾸어 버릴 수 있다. 중세 봉건제도와 근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같은 체제의 변천사도, 결국은 경제적 시스템이 정치와 사회 전체의 구조변화 즉,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초래했기 때문에 나타난 역사적 산물이다. 물론 이에 대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

 

따라서 사회, 정치, 역사, 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경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생계(生計)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과, 돈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거의 없는 사람들조차도,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경제를 배우려고 노력하곤 한다. 또한 평범한 서민들 역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경제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이들 중에는 현재보다 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소위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도 있고, 단지 ‘생존’을 위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마련할 수 있는 좀 더 좋은 수단과 방법을 찾아보려고, 경제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세상은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모두가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스미스가 주창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가격(價格)기구가 작동하는 시장(市場)의 원리에 의해서, 상호이익이라는 이타적(利他的)인 결과를 창출하면서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행위로 인해서 발생하게 될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경제를 배운다. 이로 인해 무정부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토마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되는 각박한 삶의 현장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살게 된다. 특히 경제윤리의 문제를 다루는 규범경제학이, 수치화된 경제현상만을 취급하는 실증경제학의 뒤로 물러나면서, ‘경제’라는 용어가 풍기는 이런 각박함은 계속해서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를 배우려는 목적은,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배우고 익힌 경제적인 ‘이론’과 ‘정보’와 ‘기법’에 대한 탁월한 능력은, 그들에게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이익을 제공해 준다. 경제적인 탁월한 능력은, 이러한 이익 가운데 최소한 한 가지 이상, 많게는 두세 가지의 이익을 동시에 가져다주기도 한다. 경제적 이론은 주로 명예를 가져다주고, 경제적 정보는 주로 돈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경제적 기법은 주로 권력을 얻게 해준다.

 

각 분야에서 남들보다 특출한 이론과 정보와 기법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국가나 단체의 요청에 의해서, 권력명예를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외환시장, 주식시장, 채권시장, 선물시장, 부동산시장, 현물시장, ... 등등 각 영역에서, 남들보다 더 탁월한 경제적 이론(theory)을 습득하고, 이런 이론을 현실의 정보(information)와 접목시킬 수 있는 예리한 기법(technic)을 연마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지식(knowledge)’이란 곧 ‘소득’과 직결 된다. 즉, 경제적인 “앎”이 “돈”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과 기법을 이곳 아고라 경방에다 올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유익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경방의 ‘고수’들 역시, “왜 내가 사람들 사이에 유명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미네르바의 말처럼, 자신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이런 ‘명예’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

 

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첫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남들이 받게 될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이 땅의 현 권력층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여준 추한 행적이다.

 

둘째는 자신이 습득한 경제적인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피해를 방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소극적인 이익이다. 아마 미네르바도 이곳을 찾는 네티즌들에게 적어도 이런 이익을 주기 위해서 글을 남겼다고 생각된다. 경제적인 각종 ‘정보’에 무지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가, 고급정보를 소유한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당해야만 하는, 그가 말한 소위 ‘천민’들의 피해를 막아보려고, 미네르바는 이곳에 글을 썼던 것이다. 더 나아가 미네르바는 이를 위해서,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사람들에게 강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든지, 아니면 소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든지 간에, 단지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경제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 미네르바가 알려준 가장 값진 교훈일까? 바로 그것이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서 배워야만 하는 본질적인 이유이며,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을 이곳 아고라 경방에 남긴 행위를 통해서, 우리에게 ‘체험적’으로 보여준, 그토록 소중한 교훈의 전부인가?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사람들은 더 많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경제를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이곳 아고라 경방에 글을 쓰는 행동, 그 자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동기에서 경제를 배우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의사’ 지망생들이, 단지 돈과 권력과 명예를 더 빨리 얻기 위해서 의사가 되려는 세상에서, 이들 지망생들과 전혀 다른 동기와 목적을 위해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전자의 의사 지망생들은 의사의 본질을 규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후자의 의사 지망생들은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자신의 삶과 목숨을 건다. 마치 이 땅에서 존경받고 있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일컬어지는 장기려 박사의 모습처럼 ... 히포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선서(宣誓)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으며,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고, 인간의 생명을 탄생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이와 동일하게 자신만의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 경제를 배우고 활용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미네르바가 이곳 아고라 경방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직접 보여준 것처럼 ... 이럴 경우 이 세상은, 토마스 홉스가 언급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되는 삭막한 모습이 아니라, 제레미 벤담이 언급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하는 좀 더 따뜻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다양한 지식 가운데, ‘명예를 중시하는 학자들에게는 ‘이론’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권력을 중시하는 정치가나 정책담당자들에게는 ‘기법’이 더 중요시 된다. 그러나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시 되는 것은, 바로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정보’다. 특히 정보 중에서도 단지 소수의 특권층만이 알고 있는, ‘돈’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큰 ‘제한된 정보’가 중요시 된다.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소위 ‘고급 정보’라고 한다.

 

양질의 고급정보는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돈’을 벌게 해 준다. 반면에 이 정보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보가 ‘큰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또한 이런 고급 정보는 돈을 넘어 권력과 명예로까지 그 혜택의 범위를 쉽게 확장시킬 수 있다. 때문에 돈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기득권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런 고급 정보가 비용 지불 없이 아무에게나 손쉽게 유출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려고 애쓴다.

 

이들은 이런 고급정보의 차단을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언론 조작”을 시도한다. 이들은 언론을 조작함으로써,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 정보’를 유포한다. 중요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다고 말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무시해 버린다. 위험하지 않을 때, 위험을 조장하지만, 정작 위기가 다가왔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주가나 집값이 내릴 것으로 전망되더라도, 내리지 않고 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환율이나 금리나 물가가 오르고 있으며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어도, 이들이 조만간 내릴 것이라고 떠들어 댄다.

 

이처럼 이들은 ‘언론 조작’을 통해서, 돈이 되는 고급정보는 자신들만이 소유한 채, 피해를 야기 시킬 수 있는 거짓정보를 대량으로 유포한다. 그리고 이런 거짓정보를 믿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만큼, 그에 비례해서 이들은 더 큰 이익을 탐욕스럽게 챙긴다. 아마도 미네르바는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며, 이를 폭로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기득권을 지닌 소수의 특권계층은 이런 ‘언론 조작’을 위해서, ‘언론 통제’를 시도하고, 언론 통제에 대한 내부적 반발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언제나 “언론 장악”을 최우선적으로 시도한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의 역사가 알려주는 “가장 위험한 적은 항상 내부에 존재한다.”는 불멸의 진리를, 이들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장악으로부터 출발한 독재 권력의 탐욕은 언론통제와 언론조작을 거쳐, ‘기득권의 이기적인 이익추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온전한 정보를 소유하지 못한 다른 쪽에 피해를 줄 수 있게끔, 정보가 한쪽 계층으로 편중되어 흐르는 현상을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라 한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은 독재체제 하에서 가장 극심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는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보공개법’을 만들어 시행한다. 물론 이 역시 기득권 세력들이 강하게 반발할 경우, 제한적으로 운영될 뿐이지만 ...

 

그러므로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무너뜨리고, 돈이 되는 ‘고급정보’를 사람들에게 고의로 유출시켜, 자신들의 ‘언론 조작’의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경우, 그 사람은 반드시 탐욕스런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통제와 탄압을 받게 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현 권력층과 기득권 언론들이 미네르바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그를 탄압하려는 본질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로 인해 미네르바는 국가의 ‘침묵명령’에 대하여 더 이상 경방에다 경제적인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 사실상 아직까지 더 이상 경제적인 글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네르바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하여 온갖 방법으로 탐욕적인 이익을 추구하면서,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기득권 세력들에 대하여 결코 침묵하지 않고 있다. 미네르바는 비경제적인 글을 가지고,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미네르바의 글을 계속 읽어 왔던 네티즌 가운데는, 최근에 쓰여 진 미네르바의 비경제적이며 다분히 정치적인 들들이 그의 글이 아니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글을 깊이 읽어보면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모두 동일함을 깨달을 수 있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고양이를 문다”는 옛말처럼, 다급해진 MB정부는, 미네르바에게 경제적인 글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어떤 글도 더 이상 쓰지 말라고, 또 다시 위협을 가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어쩌면 미네르바의 글은 한 편의 난해한 시(詩)처럼 쓰여 질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네르바는 현 정권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글 속에 담겨 있는 그의 사상과 철학과 신념이, 그를 그렇게 몰아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네르바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이글의 처음에 제시했던 질문인, 왜 경제를 배워야만 하는가? 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답은 미네르바가 우리에게 체험적으로 알려주는 가장 값진 교훈이 될 것이다.

 

경제를 배워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은, 나만의 이기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경제를 배워서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이런 모습은 현재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곳 경방에서 그토록 비난하고 있는 기득권 계층의 탐욕적인 이익 추구와 과연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중에 떠도는 말처럼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것인가?

 

또한 좀 더 소극적으로 나의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경제를 배운다고 해도, 이런 모습 역시 기득권 세력의 이기적인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에 악착같이 ‘종부세’를 무력화시켜서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을 막아보려는 기득권 세력의 모습과, 경제를 배워서 자신의 손해를 막아보려는 네티즌의 행동은 과연 얼마나 다르겠는가? 물론 똑같지도 않겠지만 ...

 

그러므로 미네르바가 이곳 경방에서 자신의 글을 읽는 네티즌을 향해, 여러 책들을 추천해 주면서 ‘실체적 진실’을 배우라고 요청할 때, 사람들은 미네르바가 그렇게 요청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를 발견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미네르바가 쓴 글의 내용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곳 아고라 경방에 글을 쓰는 그의 행위 그 자체 속에 있다.

 

미네르바가 사람들에게 보여준 행동은, 경제를 부지런히 배우고 실체적 진실을 깨달아서, 아직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숨겨진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진실만큼 강한 것은 없는 법”이다. 때문에 시민혁명이 일어나면, 항상 혁명군은 방송국과 신문사를 가장 먼저 장악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 시민혁명군은 그동안 숨겨진 독재자의 모든 허위와 거짓들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독재자의 지지기반을 한 순간에 와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의 한계를 넘어서, 진실을 폭로하는 행동은, 미네르바처럼 기득권 세력의 탄압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배워서’, 끝까지 ‘남들을 유익하게 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면, 미네르바의 행동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값진 교훈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항상 손해보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다면 ... 이것이 바로 미네르바가 네티즌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쓴 글 속에서 나타나는 미네르바의 시선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항상 고정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열광하는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사실이라는 팩트는, 항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이때 팩트의 전체를 알고 있으면, 그로 인한 파급효과의 전모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팩트의 일부분만을 알게 되면, 그 파급 효과를 오판하기 쉽다. 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분적인 지식은 치명적인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 권력층과 기득권 특권계층은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효과와 부작용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기에 이들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고수(固守)하기 위해서, 언론장악을 제 1순위로 추진하는 것이다. 마치 현 MB정권처럼 ...

 

미네르바는 항상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를 주장했다. 미네르바의 "극사실주의" ... 사실이라는 'fact'가 있고, 그 팩트가 주는 영향이, 인간의 '탐욕'에 의하여 숨겨져 있을 때, 이런 욕심의 껍데기를 과감하게 벗겨버리는 행동, 그래서 착취의 도구로 오용될 수 있는 '부분적인 fact'가 아닌, 더 이상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총체적인 fact'를 거침없이 공개하는 미네르바의 겁 없는 행동 ... 아니 그렇게 해야지만 스스로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미네르바의 생각 ... 바로 이런 사상이 "극사실주의"를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탐욕의 껍데기 속에 숨어 진실의 피를 빨고 있는 독재자와 매국노들은, 이런 미네르바의 극사실주의를 두려워하고, 또 핍박한다.

 

이제 글을 모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글의 제목처럼 미네르바가 우리에게 알려준 가장 값진 교훈은, 먼저 그가 요청한 대로 경제를 부지런히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네르바가 직접 실천적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 것처럼, 자신만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특히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무너뜨리는 ‘극사실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만한, 아니 살아보고 싶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 네티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소중한 삶이 될 것이다.

 

... 깨어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이런 고귀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