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해독-담담당당] 우리세대가 살아남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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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길과 너무나 많은 우회로 너무나 많은 선택과 실수들...
인생이란 도로를 달릴 때 여자들은 종종 길을 잃곤 한다. 그럴 땐 '만약'이란 말을 잊어 버리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중에서
<시대전쟁 제18화> 한국의 한 시대가 살아남는 방법에 대하여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 <섹스 앤 더 시티>의 글을 일부러 빌려 봅니다. 전혀 진지하지 않는 듯한 저 드라마에서 <여자>의 자리에 <시대>를 넣어보니, 그래도 말이 되는군요. 거기에는 '여자'로 상징되는 흔들리는 사람이라는 기표 하나가 자리하는 듯합니다. 사람이 모여 만든 사회,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집단, 그리고 국가, 이어지는 시대.....역사. 무거움이 한 번도 벗겨지지 않는 생(生)이 모두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국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목숨의 이름표를 붙이고 살지요. 그래서 이 땅을 사랑하고, 이 시대를 사랑해야 한다는 건 대명제에 속합니다. 물론 표현의 방식은 다르겠지요. 각자의 위치에서 그렇게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고, 그 속에서 기대와 희망, 그리고 목표를 향한 길 걷기, 그리고 저렇게 때론 흔들리면서 선택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지요. 시간이 흐르면, 그에 다른 관찰, 이어지는 감상이 있게 마련인 법이어서...여기 그것을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우리시대를 정리해 보자.
한국이 처한 지금의 한 시대는 IMF라는 경계선이 너무도 뚜렷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것이 단순하게 경제적 쇼크 차원이 아니라...이 땅에서 경제로 인하여 시대의 너무 많은 부분을 망가뜨리게 된, 또 그것을 확인하게 된 계기라고 보지요. 그 이후의 퍽퍽했던 삶들에게는 지옥같은 시간이었고, 또 어떤 버블 국면에서는 보편화된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된 상황도 존재합니다. 치열한 경쟁이 아니라, 일단 경제(돈)를 잣대로 한 개인주의 시대는 사회안전망 자체를 많이 위협하기도 합니다. 아엠에프로 시작된 경제적 개인주의 사회안전망을 위협.
이런 상태에서 한국이란 한 국가 차원에서, 또는 사회, 집단 속에서 앞으로의 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다시 <경제> 하나만의 잣대로 가는 것을 나는 경계합니다. 뻔히 세계경제위기가 오는 데 이것 무슨 쉰소리인가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시대가 살아남는 방법'은 연구되고 또 옳지 않은 점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연재가 쭉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는 이것을 거론하는 의미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경제라는 잣대만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나의 정리가 정답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나는 의견을 제시할 뿐이며, 그것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것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소관입니다.
첫째, 한국은 한국 만의 고유한 것, 독특한 것을 유지 발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무조건적인 국제화니 세계화에 휩쓸렸던 지난 시간의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고 봅니다. 그게 문화나 교육, 그리고 사회의 기본적인 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패배주의를 버려야 하지요. 우리만의 색깔이 있는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문화상품이든,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둘째, 한국은 한국이 처한 가장 나쁜 환경을 좋거나 혹은 적어도 평행선은 유지하면서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합니다. 분단역사에서 이처럼 참혹하게 될 연대기는 다시 없을 조짐이 보입니다. 격변에 개입하지 못하는 분단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 그것은 앞서 지적된 '코리아 리스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형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걸 의미합니다. 최소한 '평행선'이라는 것이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입니다. 환경을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할 망정, 현상유지를 하는 상태에서 더 좋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셋째, 한국은 사람이 보물입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가지지 않는다면...한국이란 사회가 더 이상 버텨낼 공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1%를 위한 4%를 위한 5%를 위한...그리고 나머지 90%를 위한 정책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위험합니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있을 뿐이지요. 이것은 정치도 경제도 뭣도 아닌 발상법입니다. 가치매김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빠지면 아무것도 없다. 다 사람이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넷째, 한국은 절대 어느 한 군데의 의존성을 높게 하여 무조건 기대고 살아가서는 그로 인한 <노예화>의 단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굳이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꺼내지 않더라도 적절한 수준에서의 의존성의 팽팽함이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거기에 친(親) 혹은 반(反)의 각도 보다는, 적절한 유지가 관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과도하게 어느 한 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가져올 국민과 국가, 사회와 시대의 긴장과 와해는 앞으로의 많은 시간들에서 우리에게 더욱 열악한 시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것은 극복되어야 마땅합니다. 어느 나라에만 일방적으로 매달리면 안된다. 균형을 잡아야지. 줏대,
다섯째,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대와 나라, 사회와 국가의 근간을 해치려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른바 '매국'(賣國)이란 영역에서 다루어질 사안이 됩니다. 그러한 시도나 혹은 의도가 반영되어 있거나 또는 사적 이익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도라면, 사회안전망은 작동을 해야하는 게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시대의 이야기가 온전하게 자리잡기 어렵다고 봅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라를 팔아먹으면 안 된다.
여섯째, 사적 이익의 추구입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적 이익의 추구는 당연한 것이지요. 경제가 재화와 용역을 근간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에서 빈부라는 것도 기회가 동일한 환경이건 아니건 간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여기서 제기하는 것은 사적이익이 정치적이거나 혹은 다른 경제외적인 부분의 경쟁과 경합으로 보편화되는 추세로 간다면...아마도 사회 자체는 정치적인 담합의 룰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안전망은 지난 시간동안 급속하게 붕괴된 상태지요. 그것이 되살아날 수 있는 마인드가 너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사적이익의 추구는 사회안전망을 고려해서 추구되어야 한다.
일곱째, 지금의 경제는 경제가 아닌 다른 변수에 의해 너무 많이 움직이는 듯 보입니다. 즉, 경제적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많은 정치적 시도가 경제적 형세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기 시작합니다. 국민적 토의라는 것도 별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쇠고기가 그랬고, 대운하니 한일해저터널이니...어쩌면 이런 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가 경제를 무조건 선도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여기 또한 사회안전망이 적절한 수준의 비판과 저지가 필요하지만, 이미 갈등은 '내가 정치적으로 힘이 있다'는 말 한 마디로 모두 귀결되어 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경제가 아니라 그저 정치일 뿐입니다. 한국의 오늘이 다시 완전한 정치공화국이 되고 <장닭공화국>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경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여덟째, 지금이 그런 때라는 자각입니다. 인지(認知) 수준이 아닌 자각, 몰지각 하지 않는 형세를 보는 눈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어쩐 일인지 지식인 사회는 침묵 속으로 가고...어쩐 일인지..패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사회일까? 비록 이런 형세가 이어진다고 해서 살아갈 사람이 살아가지 않을 바는 아니나...과연 이런 시대를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물려줘야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그렇지 않다는 것이 해답으로 대두됩니다. 지금이 바로 움직여야 할 때이다.
아홉째, 한국이 가진 이 시대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과연 무엇이 지금 잘못되어 있는 것인가? 근본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현상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요. 논란은 필요한 것이나, 그 형세를 판단하는 올바른 눈은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지 지금도 갈피를 못잡는 사람들이 많지요. 갈등은 억눌러 지는 것이 아니라...정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등이 많이 부추겨지는 사회가 건강한 것이 될 수는 없지요. 갈등을 부추기지 말라. 그리고 사람들을 억누르지 말라. 우리는 빨갱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 그저 니들이 원하는 대로 세뇌되지 않는 열등생일 뿐이다.
이런 것들이 나의 소망같은 것입니다. 시대를 보는 눈에 있어...최소한...뒤로 돌아갈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현상과 현황에 대해 지켜보고자 하며, 그 잘못됨을 더 지적하고...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은 길이지요. 이것은 결코 작은 소망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절대 불필요한 소망도 아닌 것이지요.
'만약'이란 단어를 잊어버립니다. 이 시간에서는 지금부터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에는 결코 '만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이 다시 떠오릅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가? 그러나 변화없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우주의 자연에 이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절한 것이 있을까? 장작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운 목욕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만일 음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겠는가? 그 밖에도 변화가 없이 긴요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 있는가? 당신 자신이 변하는 것도 동일한 경우에 속하며,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연에 있어서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는가?"
모든 것은 변한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 것도 안다. 그러나 해가 떠서 기울며, 쥐구멍에도 볕이 들듯이. 볕이 들었던 모래위의 누각에도 어둠이 드리울 것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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