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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해독-담담당당]친일에다가 경제를 끼워넣지 마

Mr. Han 2008. 11. 25. 16:23

[암호해독-담담당당]친일에다가 경제를 끼워넣지 마.

 

 

1. 천하에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한다.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희생하기로 한다.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으로 한다.

4. 단의 뜻을 우선하고 단원의 뜻을 실행하는데 속히 한다.

5. 의백(義伯)한 사람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하게 한다.

6. 언제 어디서든지 매월 일차씩 상황을 보고한다.

7. 언제 어디서든지 모이도록 요청하면 꼭 응한다.

8. 죽지 않고 살아있어 단의 뜻을 이루도록 한다.

9. 한 사람은 다수를 위하여, 다수는 한 사람을 위하여 헌신한다.

10. 단의 뜻에 배반하는 자는 처살한다.

 

- 의열단(義烈團) 공약 10조

 

<시대전쟁 제19화> '친일'의 판단기준과 '경제'라는 혼선조장 방식

 

이제 거의 전반부가 끝나 갑니다. 44회 연재의 전반부는 사실상 <현황>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내용을 쭉 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용도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코리아 리스크의 실체, 시대 속으로 들어오는 친일...등의 영역을 골고루 다루어보는 것입니다. 후반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제 상황파악 거의 끝나간다.

 

세 가지의 관점이 존재합니다.

 

첫째, <우기기>입니다. 여기도 우긴다는 것이나 혹은 밀어붙이기 같은 일종의 막무가내식의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 보입니다. 18회를 끝내고 경방에 올린 글 가운데는 난데없이 <이완용을 존경하고 그가 왜 매국노냐?>(낚시하는정태공의 글)이 올라오더군요. 이런 형식입니다. 약간 변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술적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걸 꺼냈던 사람들이 있었지요. 안 모 교수로부터 시작해서 이걸 가지고 1988~1992년 이후 줄곧 지금까지도 털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냥 우기는 겁니다. 그걸 잣대로 해서 근현대사 교과서도 다시 쓰는 게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냥....말하는 거지요.

우기기 앞에 장사없다.

히틀러의 나찌 선전장관 괴벨스는 말했지.

'거짓말도 자꾸 듣다보면 진짜같이 느껴져.' 라고.

 

제1화(연재1.)에서 '동척'(東拓)과 '만철'(滿鐵) 이야기를 했습니다. 댓글 중에는 '동척'에 의해 토지를 몰수 당했던 과거의 일을 자세히 적어주신 분이 있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실제상황이었지요. 그렇게 당한 역사는 사실 우리 개개인에게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조상들이 겪었던 일이었기도 합니다. 하물며 '정신대'의 역사를 부인하는 자까지 생겨난 한국의 현실이고 보면, 이것은 더말할 나위없는 엉터리 주장이지요.

정신대도 없었다고 우기는대, 동척이나 만철은 닐러 무삼하리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만철'입니다. 대저 '기획'하는 자가 무서운 법입니다. 그래서 모사(謀事)를 하는 자의 성격을 모르고는 벌어질 일을 짐작할 수 없다는 이야기마저 있지요. 만철조사부는 현재의 일본경제를 만든 원천입니다. 극우와 우익 플러스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지요.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던 것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패한 원인까지 규명하고 보완하면서 진행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를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로부터 우리는 <친일>이 단순한 개인의 성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적이익과의 결합으로부터 금권과 정치권력 같은 것과 항상 결합하면서 움직여지는 변종 바이러스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기획하는 놈이 어떤넘인질 알아야,

졔들 작전이 뭔지 짐작 또는 파악이 가능하다.

핵심은 정치와 경제의 짝짜꿍 + 사적 이익. 

 

둘째, <친일>과 <친북>을 상대어로 두는 겁니다. 이게 항상 사용되는 방법입니다만, 이를 달리 표현하면 <메카시즘적 접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친북이 친일보다 나쁘다는 개념인 것이지요. 어떤 경우에는 둘 다 안좋다는 평행선을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반북과 반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의 출발점은 일종의 판단의 애매한 각도를 요구합니다. 즉, 어떤 형세(이것이 바로 경제이지요만)에서는 친일을 납득가능한 수준에서 수용하는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친일 안 하면 빨갱이란 소리.

 

여기서 변종이 하나 등장합니다. 친북을 하는 측은 항상 친일을 반대했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증거 사례도 붙지요. 이를테면 북한도 초기에는 독립투사를 탄압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꺼냅니다. 그 박해와 수탈을 감당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와서 여기서는 독립운동가로 대접받았다는 겁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이런 예는 꽤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지요. 침소봉대까지는 아니나 전면적으로 이를 근거로 한 '친북=친일반대=반일'이라는 노선을 만들면서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우기기 팔단들의 수법.

100% 거짓만 가지고는 상대를 속일 수 없다.

이것도 괴벨스의 명언이지.

 

그러나 이것은 절대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가지의 숙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것도 팽팽할 정도로 북한문제는 취급되는 경향입니다만,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숙제는 <해방과 독립>이라는 두 단어의 모순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강점시대로부터 '해방'은 되었으나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은 하지 못했습니다. 분단역사가 가진 의미 자체가 바로 '미완성된 독립'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원초적 죄업인 일본제국주의라는 것이 있는 한..그들이 그런 의도를 버리지 않는 한..지워질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사실은 '친일'이라는 말을 도저히 입밖에 꺼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런 추세로 누군가 몰고 있지요. 그래서 많은 논리도 아닌 논리들이 만들어 집니다. 사실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이 '친일'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완전히 해방된 거 아니거든.

독립이란 말은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고.

 

셋째, <폄하논리>입니다. 한국이란 사회 국가 자체의 능력 자체를 임의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른바 '조선사람은 안돼!'하는 식의 말들입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습니다. 민족적 기질이나 혹은 현실에서는...그러나 이것이 바로 비교대상을 '일본'으로 하면서 다가서는 경우에는 그 모양새가 우습게 바뀝니다. 즉, 일본을 선진국으로 보는 선망의 대상이라는 관점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렇게 말도 합니다. 증거도 제시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경제'라는 허울 속으로 들어가는 중간 지점의 통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낮춘다고 상대가 자신을 더 낮추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식민적 사고라는 개념은 여러 형태가 주어집니다만, 바로 이런 스스로 폄하를, 폄훼를 자처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방식이 아닙니다.

엽전은 패야 말을 들어. 같은 류의 패배주의를 조장한다는거.

그렇게 해서 방관주의로 몰고 가는거야.

 

그래서 '패닉으로 몰고가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당신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친일'을 해도 좋다고 보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답은 각자 개인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요.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질문으로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분단역사를 정리하지 않은 '독립되지 못한 나라..민족'이 그 원인을 제공했던 제국주의와 팽창주의를 전혀 버리지 않은 집단인 일본의 극우와 우익적 관점을 '신봉하고 따르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당연히 거부되는 질문입니다.

(짱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친일을 해도 좋다고 본다.

하지만, 일본놈이 내 안방에 들어와서 내 마누라랑 끙끙 하는 꼴은 못봐-역자주) 

전제가 두 가지 나옵니다.

 

첫째, 일본이 과연 변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둘째, 일본이 한반도와 한국에 대해 평화적인가 아닌가, 의도적인가 아닌가에 있어서 '국익의 소재'뿐만 아니라 '시대의 소용(所用)'을 따져볼 일입니다.

 일본은 변한게 없어. 식민지 빨아먹던 놈들이 아직도 실세야.

 

엔화대출 평균 환율이 100엔당 850원이었는데...어제의 환율은 100엔에 1,575.84원까지 올랐습니다. 원/달러 환율도 문제지만 원/엔 환율의 변화는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고환율정책의 폐해라고 보기도 어색합니다. 이런 차에 원/엔화의 스왑이 확대된다고 하고, 우리는 그 조건이 궁금해집니다. 한일간의 경제, 정치라는 변수가 깊숙하게 치유책이 막막하게 보이는 한국경제로 삼투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충격을 쉽게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해결책은 있습니다. 일단 경제정책의 수장이 교체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강.만.수 장관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유가 있나요? 일신(一新)을 하지 않을만한 이유를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엔환율이 오르는 이유가 뭘까?

이것도 무슨 의도적인 노림수가 있는게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원/엔스왑하면 누구한태 이익일까?

한국돈 더 많이 줘야하잖아? 환율 올라가면. 오케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