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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예언’의 허와 실

Mr. Han 2008. 11. 24. 17:40

‘미네르바 예언’의 허와 실…환율은 족집게, 주가 전망은 글쎄?

미네르바는 경제 위기를 예측하고 정부의 잘못된 처방을 비판하며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떠오른 사이버 논객이 장안의 화제다. 직장인서 주부까지 ‘모르면 왕따를 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앙SUNDAY는 청와대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이 “정부는 미네르바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려 한 적도 없고 따라서 침묵을 명령한 적도,탄압한 적도 없다.일부의 출국금지설은 언어도단이다”라며 “미네르바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네르바는 환율 예측에서 족집게 실력을 발휘했지만 주가 예측은 어긋난 경우가 있었다. 또 정부에 대한 불신이 미네르바 열기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내일 장 초반부터 원-달러 환율이 폭등한다. 유학생 자녀 두신 분이나 소규모 수입상들은 한두 달치 물량을 확보하라.” 지난 10월 5일 일요일, 인터넷 토론광장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이 같은 글이 떴다. 그는 “최소 50원 이상 환율이 급반등하는 장세가 주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고, 2차로는 15일 전후로 폭등할 소지가 강하다”고 봤다. 근거는 이랬다. “시중은행의 외부 달러 수혈이 모조리 중단됐고, 국책은행조차 은행에 빌려준 달러 회수에 나선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 전 주말 1223원이던 환율은 월요일부터 사흘간 40~60원씩 올랐다. 또 15일부터 이틀간 30, 130원씩 뛰었다.

미네르바에게선 이처럼 ‘환율 프로’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취재팀은 460여 쪽에 이르는 ‘미네르바 글모음’ 파일과 기고문 등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그는 시장을 비교적 잘 보고 ‘엔캐리 크로스 거래, 투신의 다이내믹 헤지, 수출업체 리딩·래깅 전략’ 같은 전문용어를 술술 구사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도 비슷한 케이스다.

미네르바는 10월 초부터 줄기차게 스와프를 주장해 왔다. 미 구제금융 7000억 달러로 유동성 위기가 완화될 것이란 시중 분석에 그는 코웃음쳤다. 실제 물밑 협상을 벌이던 정부가 10월 말 협정을 체결하자 요동치던 시장이 한동안 안정을 찾기도 했다.

미네르바는 ‘헤지펀드’를 악의 축으로 본다. 제도권에서 대개 외국인 주식매도, 해외펀드 환헤지, 통화옵션상품(키코·KIKO) 등의 복합효과를 시장 교란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과 차이 난다. 최근엔 환투기 세력을 ‘노란 토끼’로 부르며 “일본계 헤지펀드가 내년 봄에 한국을 공격할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 차관보는 “그런 시나리오가 가능했다면 이미 엔캐리가 한창 극성을 부렸을 때 공격했을 것”이라며 “미네르바의 글을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경제가 어려울 땐 그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반박했다.

미네르바는 “지난해 가을 돈 가뭄에 빠진 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했는데 일본 자금이 대부분 매입했다”며 “금융권 연쇄 도산이 시작되면 내년 3월까지 못 버티고 일본 자본에 편입된다”는 섬뜩한 주장도 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칼리온은행 서울지점의 이진혁 대표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는 “일본인들이 CD를 샀다고 하더라도 은행이 쓰러지면 득될 게 없다”며 “한국을 무대로 한 일본계 자금 규모도 그렇게 크진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네르바가 잘못 짚은 부분도 있다. 예컨대 한·중·일 통화 스와프가 그렇다. 그는 10월 초 “일본은 지원 여력이 없고, 중국과의 스와프는 한·미 간 정치적 고려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최근 3국 재무장관은 스와프 확대에 합의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에 대해서도 “환율이 1050원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어렵다”고 봤으면서도, 다른 글에선 “꼭 성사시키라”고 주문하는 논리적 불일치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주가·부동산과 관련된 글이 일파만파를 불러왔다. “올해 주가는 한국이 500, 미국은 5000선이 바닥이고 중국은 1000선이 붕괴될 것”이라는 신동아 기고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고라에선 ‘환율+금융 불안→부동산+금리 불안’으로 확산되는 사이클을 외국인이 주시한다고 지적했다. 즉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전엔 진정한 주가 바닥을 논할 수 없다는 논리다. 실물위기가 아직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다. 실제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제도권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주 말 신영증권은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처럼 전방위적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코스피가 500까지 떨어진다고 봤다. 그러나 HMC투자증권의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미네르바의 주장대로라면 세계 증시가 모조리 망가져야 한다”며 “물론 지금 어려운 건 분명하지만, 각국 정부에 아직 힘이 남아 있고 여러 정책을 펼 여지가 있는 만큼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미네르바의 주가 예측이 다 맞은 것도 아니다. 그는 9월 18일 코스피지수가 1400가량일 때 “지금 경제 상황에선 주가는 1210~1235의 박스권이 적정하다. 1200 저점 밑이 아니면 사지 말라”고 짚었지만, 이후 코스피는 1000선이 붕괴했다.

사실 미네르바가 얼마나 신통한지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의 글이 신뢰를 얻는다는 자체에 더 주목해야 한다. 정권 초기부터 꼬인 환율 정책에 대한 비판 등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론이 없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정부가 밀도 있고 선견지명 있는 위기 수습책을 내놓으라는 게 미네르바 신드롬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