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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를 그대로 놔둬라

Mr. Han 2008. 11. 23. 16:25

미네르바를 그대로 놔둬라

 

 

한국은 이성적인 사회인가 아닌가, 집단 지성이 작동하고 있는가 아닌가. 미네르바는 우리에게 다시 이런 것을 묻게 한다.

그(미네르바가 남자라면)를 무조건 옹호할 생각도 무조건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의 파격적인 경제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내용도 있고 그렇지 못한 점이 있다. 

그의 글을 몇 편 보았는데 주지하다시피 상당히 전문적인 경제지식을 동원한다. 금융위기가 아니면 보통 땐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금융지식이 때가 때인 만큼 어필하고 있다. 

그렇긴 하나 금융독점자본주의나 그 파괴력 논란은 미네르바 훨씬 이전 좌파 사회과학자들의 단골 메뉴이고 지금은 더 한 상황을 맞이했다 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예견은 미네르바도 미네르바이지만 애널리스트라면 불가능한 예측만이 아니고 환율 폭등도 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직업인이라면 예견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각종 전문적인 데이터로 접근, 적절한 비유와 거친 어법으로 읽은 이로 하여금 답답한 속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맛이 있었다는 점에서 여느 금융인과 달랐다. 

턱없는 논리도 아닐뿐더러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정을 해설하듯, 때론 다그치듯 한 점이 네티즌들의 기호에 맞았다. 

그러나 그의 조악한 측면도 없지 않아서, 그는 한국경제가 절단 나니 가족을 돌보고 각자 살길을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열심히 배워 한국을 떠나 살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금융 경제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다 놓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본 미네르바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상당수 사람은 일견 넋두리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일본과 중국, 또 다른 국가일지라도 세계 금융위기 포위망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지 않다면 그의 지적이 그렇다는 얘기다. 

허나 한국 사회가 갈수록 빈부격차가 벌어져 상위 몇 프로 이외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비참한 삶이 될 것이란 그의 주장은 도식적이긴 하지만 무조건 무시하긴 힘들다. 

또 여름에 물가에 가지 말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점쟁이 말처럼 들릴지라도 내년 또는 수년간 경제가 더 나빠진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코스피 지수가 500까지 떨어지고 이로 인해 애국심에 호소하는 정치적 논리가 나올 것이라는 것도 그 유의미함이 있을 것이다. 

오바마도 내년 미국 경제악화를 예상하고 일자리가 수 백만개가 사라질 것에 대비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안을 준비 중인 것을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위기를 재차 실감케 한다. 

이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빨리 살길을 찾으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은 ‘경제인’ 미네르바의 말로선 옳은 지적일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과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할 듯싶다. 

미네르바는 철저히 사는 문제를 경제논리에서, 그의 말대로 하면 극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접근하는 것으로 읽힌다. 

애국심을 정부가 호소하고 그것을 일반 국민이 따른다고 해서 일반 국민이 모자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바꿔 말하면 G20 금융 정상회의 때 금융위기의 원인이 미국발이라는 것을 몰라서 부시 대통령에게 각국 정상이 그것을 성토하지 않은 게 아니다. 

워싱턴에서 각국 정상들이 금융위기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였다고 했으면서 다시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보이면 세계 금융시장에 패닉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또 부시는 어차피 내년 1월이면 떠나는 사람이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고 가는 경우가 있는, 명쾌한 경제논리로만 우리 삶이 재단되고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네티즌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어려운 금융전문지식을 쉽게 풀어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남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환율 폭등에 대해 정부가 비호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데이터를 들이대고 가하는 비판이 색달랐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경제의 눈을 가진 인물이지 원래의 ‘미네르바’가 지닌 뜻처럼 지혜의, 필로소피한 인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이코노미스트일지 모르나 소셜사이언티스트는 아니란 것이다. 

미네르바를 논함에 있어 그 지점에서만 바라봄이 좋을 듯하고 그 경계를 넘나들어 집단적인 이성의 혼란을 부추길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금융위기의, 한국 경제위기의 나름 분석을 가하고 메스를 가하긴 하되 소셜사이언티스트에게서 기대되는 비전과 희망은 없다.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글에선 찾기 힘들다. 일례이긴 하나 외국어 공부, 바로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공부를 해서 각자 살길을 찾으라는 정도이다. 굳이 비전과 희망을 그에게서 기대해야 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사이버상의 터프한 금융애널리스트, 경제 논객이라면 논객 일뿐, 그대로 그를 그냥 놓아두었으면 한다. 

글을 끝내기 전 한 가지 덧붙이면 언젠가 성철 큰스님이 시사주간지 타임을 읽는다고 해서 언론을 탄 적이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그가 불경만을 읽는 게 아니라 웬만한 영어수준이 아니면 못 읽는다는 타임을 봐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그런데 피식 웃음이 나올만한 보도였다. 스님과 타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인지 이렇게 언론이 보도를 했다는 것이 그렇고, 또 한가지는 당시에도 웬만한 대학생이면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팔짱에 끼고 다녔을 시절인데 그럼 이 경우는 어떻게 언론이 보도할 것인지, 대서특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성철 큰스님이 읽는 타임을, 새파란 젊은이들이 일반 잡지처럼 끼고 다니며 읽는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