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이야기/부동산기사

집값 떨어지면 셋방살림 펼까?

Mr. Han 2008. 11. 18. 12:05

집값 떨어지면 셋방살림 펼까?

분류없음 2008/11/17 08:07 손낙구

 셋방 사는 사람에게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내집, 둘째도 내집, 셋째도 내집일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둥지가 있고 하물며 기어 다니는 달팽이도 제 집이 있건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집도 절도 없이 바람처럼 뜬 구름처럼 이 곳 저 곳 떠돌아다니며 산다. 그것도 2년에 한 번씩 방값을 올리든지 방을 빼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세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시달려야 했다.


요즘 집부자들은 헌법재판관들이 종부세를 깎아주고 이명박 정부가 양도세도 줄여주고, 언론들도 집값이 떨어 질까봐 걱정을 많이 해준다. 모두들 부동산 부자들이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내고 어떻게 하면 집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을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셋방 사는 사람들 처지에서 부동산 문제를 다뤄주는 이는 없다.

집값이 좀 떨어지고 있다는 데, 셋방 사는 사람들에게 볕들 날은 언제나 올까.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셋방 사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집값 변동에 대한 이해관계를 공부해보자. 이 글에 등장하는 통계는 가장 최근 통계인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로 그 사이 가격 변동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국민 열 중 넷이 셋방인생



낯선 곳을 찾아 뿌리 뽑힌 잡초처럼 이사 다니는 일은 어른은 물론 어린 아이들에겐 더없이 오래 남을 흔적이다. 행여 살던 집이 부도라도 나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월세 보증금을 떼여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은 최우선 변제금은 기껏해야 방 한 칸 값도 안 되는 2천만 원이 최고액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셋방을 떠도는 사람은 전체가구의 41.4%인 656만 가구 1천666만 명에 달한다. 특히 대도시일수록 많아서 서울은 셋방 사는 가구가 54%로 자기집에 사는 가구(45%)보다 많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의 절반 가까운 48%, 355만 가구가 셋방인생으로 전체의 54%가 수도권에 몰려 산다. 대전, 경기, 광주, 대구, 부산도 셋방 비율이 40%를 넘었다. 서울 안에서도 관악구, 중구, 광진구, 강남구는 셋방 비율이 60%가 넘었고, 마포구, 성동구, 용산구도 여기에 육박한다.

셋방 사는 사람의 47%는 셋방에 살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고, 19%는 5년이 넘었을 정도로 내집이 소원에서 현실로 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셋방 사는 사람의 내집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주택소유 여부, 전월세 보증금 액수를 기준으로 나누면 크게 집 사놓고 셋방 사는 사람, 보증금 5천만 원이 넘는 사람, 5천만 원이 안 되는 사람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집 사놓고 셋방 사는 사람



이른바 유주택 전월세로 어딘 가에 자기 소유의 집이 있는 데 형편이 안 되거나 직장 또는 자식교육 문제 때문에 남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전체 가구의 4.2% 67만 가구가 이렇게 살고 있다. 이 가운데 50만 가구는 전세에, 나머지는 월세나 사글세에 살고 있다. 67만 가운데 29만 가구는 전월세 보증금이 5천만 원 이상, 10만 가구는 3천~5천만원 사이지만, 나머지 28만 가구는 보증금이 3천만 원 미만이거나 보증금 없는 월세 또는 사글세에 살고 있다.

한편 수도권에만 40만 가구가 집을 사놓고도 셋방에 살고 있는데, 33만 가구는 전세에, 나머지는 월세나 사글세에 살고 있다.



보증금 5천만 원 이상 셋방 사는 사람



집도 없이 셋방을 떠도는 국민 가운데 95만 가구(전체가구의 6.2%)는 전세 또는 월세 보증금이 5천만 원 이상으로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3만 가구는 보증금이 2억 이상으로 게 중 가장 낫고, 21만 가구는 1억은 넘지만 2억은 안 되며, 나머지 71만 가구는 5천은 넘지만 1억에는 못 미친다.

이들 중 83%인 79만 가구는 수도권에 산다. 가구 기준으로 수도권에 사는 사람의 11%가 집은 없지만 전월세 보증금 5천만 원 이상을 내고 셋방에 사는 셈이다. 수도권 79만 가구 중 3만 가구는 2억 이상, 19만 가구는 1억에서 2억 사이, 57만 가구는 5천에서 1억 사이의 보증금을 내고 있다.



보증금 5천만 원이 안 되는 셋방 사는 사람



전체가구의 30% 481만 가구는 집도 없고 전월세 보증금도 5천만 원이 채 안되는 셋방을 떠돌고 있다. 이들 가운데 94만 가구는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사이의 보증금을, 140만 가구는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사이의 보증금을 내고 있고, 나머지 247만 가구는 보증금이 1천만 원 미만이거나 보증금이 없는 월세 또는 사글세 등을 떠돌고 있다. 보증금 유무와 상관없이 평균 월세는 21만원, 사글세는 28만원 수준이다.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는 처지가 더 딱한 사람들은 지하실, 옥탑방, 비닐촌, 움막, 동굴 등에 사는 68만 가구 162만 명이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지하방 거주 59만 가구의 경우 14%만 자가 소유이고 38%가 전세에, 46%가 월세 및 사글세 등 84%가 셋방에 살고 있다. 5만 가구에 달하는 옥탑방도 자가 비율은 14%에 머문 반면, 전월세 비율은 전세 37% 월세와 사글세 47% 등 93%가 셋방에 살고 있다.



집값 변동과 셋방살이



셋방 사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으며 처참한 고통을 강요당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집값을 집계한 1986년 이후 22년 동안 전세금 상승률은 집값 상승률의 두 배에 달했다. 특히 서민들이 주로 사는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전세금이 집값의 3배나 올랐으며, 서울 한강이북의 연립주택 전세금은 집값의 5.4배가 올랐다. 투기가 극심했던 1975~1980년 사이 셋방 사는 가구는 92만이 늘었고, 1985~1990년 사이에도 124만이 불어났으며, 2000~2005년 사이에는 전세는 48만이 준 반면 월세는 90만이 늘어 폭등하는 전세금을 감당 못한 사람들이 월세로 내려앉아야 했다.

집값이 폭등하면 셋방은 죽을 맛이고 부동산 백만장자와 건설재벌은 떼돈을 번다. 반대로 집값이 폭락하면 부동산 부자들은 그동안 누렸던 불로소득이 줄어들지만, 셋방 사는 사람들은 전월세 가격이 내려가니 형편이 그만큼 나아진다. 집값이 내려가야 셋방에 볕들 날이 있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져 제 값을 찾아야 터무니없이 비싼 전월세 가격도 내려갈 수 있고, 그래야 단칸방에서 서 너 명이 콩나물시루처럼 사는 셋방인생도 방 한 칸 늘려 갈 수 있다. 월세에서 전세로 한 계단 올라갈 수도 있다. 또 동굴에서 밝은 세상으로, 지하실에서 땅 위로, 옥탑에서 지상으로 나올 수 있다. 형편이 좀 나은 보증금 5천만 원 이상 내고 사는 사람들은 잘 하면 내집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

물론 대출을 얼마나 끼고 있는지, 살고 있는 셋방과 임대해준 셋방의 보증금 격차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처지가 다르겠지만 집을 사놓고도 셋방을 떠도는 사람들도 길게 보면 집값과 전월세가 안정되는 게 내집으로 들어가 살 길을 넓혀줄 것이다. 



대변자 없는 셋방인생



투기가 심할 때 그랬듯이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시기에도 셋방 사는 사람들의 처지와 견해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정치에서든 언론에서든 들리지 않는다. 집값 변동을 보는 시각은 대부분 집 있는 사람 자리에서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는 집값은 더 떨어져야 하며, 전월세 가격도 내려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다. 따라서 정부가 집값 떨어지는 것을 강제로 막는 정책은 옳지 않다는 당당한 목소리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부유층들과 건설재벌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수십조원의 국민세금을 들여 세금을 깎아주고 미분양아파트를 사주면서 부동산 백만장자들을 챙겨주고 대변하는 것과는 극명하게 비교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까지 나서서 종부세를 위헌이라 판정하고, 걷었던 돈까지 돌려주는 것과는 정말 대비되는 일이다.

역대정권 누구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셋방 사는 사람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함께 하거나 보상해준 적이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 씁쓸한 일이다.

집값 떨어지면 셋방살이 좀 나아지려나, 한 가닥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1,700만 국민의 마음을 누군가는 대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