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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스타서 피의자까지…노 전 대통령 '영욕의 64년' 16대 대통령 당선

Mr. Han 2009. 5. 23. 15:47

청문회 스타서 피의자까지…노 전 대통령 '영욕의 6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 6일(음력)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1966년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채 1년도 안 돼 법복을 벗고 78년부터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부산지역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오던 노 전 대통령은 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위원을 지낸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동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 88년 '청문회 스타' 등극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5공 청문회'를 통해서다.

한 때 시대를 호령하던 장세동 비서실장 등 '전두환 사람들'을 호령하며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폈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자 명패를 내던진 사건은 TV를 통해 청문회를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공화당의 3당 합당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면서 가시밭길을 걷는데 14대,15대 총선에서 잇따라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노 전 대통령이 다시 국회에 입성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내려지기 직전 의원직을 사퇴한 이명박 대통령 때문인데 98년 7월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된다.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정치적 안락보다는 고난의 길을 계속 택하도록 만들었다. 2년 뒤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종로를 버리고 부산 강서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민주당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낙선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지역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치인이라는 명성을 추가하게 된다.

◈ 16대 대통령 당선

 

이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너무도 무모해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 위기에 위기를 넘기고 결국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거쳐 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갑작스런 대통령 당선에 따른 반발은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도 거세게 일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열린우리당 창당이라는 카드로 돌파한다.

2003년 후반기부터 6개월 가량 진행된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안희정 현 민주당 최고위원과 강금원 창신
섬유 회장 등 측근들을 감옥에 보내는 등 아픔을 겪어야 했고, 2004년 3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가결로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거센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만 끊임없는 당·정·청 갈등과 노 전 대통령 자신의 대연정 발언 등의 악재로 집권 중반부터 내부로부터 흔들린 결과 이른바 '민주정권 10년'을 마감하는 장본인이 된다.

◈ 퇴임 후 봉하마을로

이명박 대통령이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화려한 취임식을 거행한 지난해 2월 25일 오후.

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만큼은 아니지만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기차를 타고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귀향하는 퇴임 대통령을 위해 잔치를 벌였고 전국에서 팬들이 몰려왔다.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을 급하게 타결하고 이에 대한 반발이 촛불시위로 번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석 달도 안 돼 큰 위기를 맞았다.

언론과 국민들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노 전 대통령이 있는 봉하마을을 주목했다. 방문객도 쇄도해 지난해에 9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기도 했다.

◈ 李정권과 정면충돌…'박연차 리스트' 수사로 정치적 사망선고

 

촛불이 잦아들면서 전 정권에 대한 현 정권의 공세가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정면으로 대응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실정치 참여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쇠고기협상 책임론', '대통령기록물 유출사건', '쌀직불금 부당수령 은폐의혹' 등 현 정권과 전 정권은 주제를 옮겨가면서 정면충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작은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선방했다. 전·현 정권의 싸움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지켜준 것은 도덕성이었다.

그러나 형님인 노건평 씨를 비롯해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 씨, 딸 정연 씨가 박연차 사건에 연루되고 이광재 의원, 감금원 회장 등 측근들을 감옥에 보내면서 최대이자 최후의 자산이던 도덕성이 일거에 무너져 내리면서 여론을 통해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급기야는 4월 3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했던 검찰에 의해 사법

처리를 받을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