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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세 ‘회장님의 꿈’ 마침내 이뤄지다

Mr. Han 2009. 1. 8. 14:33

[투데이]87세 ‘회장님의 꿈’ 마침내 이뤄지다

헤럴드경제 | 기사입력 2009.01.08 12:01



112층 제2롯데월드 신축 가닥…
'관광 입국'신격호 회장의 도전은
아직 진행중


20대 청년이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간 것은 1940년대 초였다. 신문팔이부터 우유배달, 막노동일까지 가리지 않고 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뒤 재일동포들은 물밀듯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청년은 빈손이 부끄러웠다. 청년은 짐을 싸는 대신 폭격으로 허물어진 군수공장 기숙사 한 쪽에 가마솥을 걸고 비누를 만들었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껌이 인기를 끌자 비누를 만들어내던 밥솥과 국수 뽑아내는 기계를 이용해 껌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시작이다. 제과에서 시작해 호텔, 백화점, 관광, 금융, 석유화학까지 포괄하고 있지만 올해 87세를 맞는 신격호 롯데 회장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신 회장이 '여생의 꿈'이라고까지 언급한 제2롯데월드 건립이다.

여러 암초에 막혀 희미해져 가던 '회장님의 남은 꿈'은 마침내 또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7일 정부는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롯데는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착공해 5년 내 완공을 목표로 1조7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아버지의 '숙원'을 잘 알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은 지난 4월 말 청와대의 민관합동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2롯데월드 건설 추진 관련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취지의 발언을 이끌어 낸 것이 물꼬를 텄다.

번번히 사업 추진에 발목을 잡혔던 제2롯데월드 건립이 가시화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0년. 롯데가 제2롯데월드 사업 계획을 발표한지 15년 만이지만 신 회장이 처음 구상한 것은 지난 1980년대 말이었다.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으로 포장하거나 치장하기보다는 실속을 취한다)을 신조로 삼고 있는 신격호 회장이 112층에 이르는 초고층 건물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 회장은 오래 전부터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호텔이나 백화점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는 시작이었다. 2007년 일본 여행사 JTB와 합작으로 롯데제이티비를 설립한 것도 관광 대업을 향한 큰 틀의 일부. 한국에 세계적인 관광시설로 제2롯데월드를 세워 관광산업을 국가의 미래 전략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사업 철칙을 갖고 있는 신 회장이 보이고 있는 마지막 고집이자 모험이다.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은 73세인 1983년에 반도체 투자를 결정했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83세에 소떼 500마리를 몰고 북한에 들어가면서 대북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87세로 국내 재벌그룹의 창업주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신격호 회장이 품은 '112층 높이의 꿈'은 지금 진행 중이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