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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스와프로는 외환위기 못끝낸다

Mr. Han 2008. 12. 13. 14:25

통화 스와프로는 외환위기 못끝낸다

  

  • 12일 중국, 일본과 통화 스와프 계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은 비상시 쓸 수 있는 스와프 금액이 1120억달러로 늘어났습니다. 이번 통화 스와프에 대해 이데일리는 "외교술의 성과"라고 칭찬했고, 조선일보는 "이제 외환부족에 따른 국가부도의 위험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화 스와프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정확히 지난 10월말에 맺은 한미통화 스와프때와 동일합니다. 당시 정부는 "한국은 미국의 보호막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좋아했고, 언론은 "IMF의 망령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11월로 접어들면서 주식은 다시 폭락하였고 환율은 급등했습니다. 미국과 맺은 300억달러의 약발은 한달을 못넘긴 셈이죠.

    지금 상황에서 몇백억 달러 수준의 비상자금 마련은 외환시장을 절대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올해 초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2600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 금액에도 시장은 한국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외환 보유고가 2000억 달러로 떨어져 최근 늘어난 통화스와프 (미국 300억 달러, 일본 170억 달러, 중국 260억 달러)를 포함해도 올해 초 수준을 회복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통화 스와프로 사태가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이 처한 외환위기는 국내 은행의 외환 자금 공급선이 막힌 것과, 외국인의 국내 투자 축소에서 발생합니다.

     

    지난 몇년간 달러의 유동성이 좋을 때, 국내 은행들은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다가 국내에서 대출을 해주고 많은 수익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하면서 국내 은행들은 더 이상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오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는 국내 달러 유동성을 표시하는 스왑 베이시스만 확인해도 쉽게 알 수 있는데, 보통 때 -50 수준인 스왑 베이시스가 -30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은행들이 외환을 구하는 중요한 시장인 FX 스왑 시장이 거의 마비되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은행들이 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갚아야 하는데 (내년 6월까지 천억달러 정도), 이렇게 빚을 갚을 달러가 없기 때문에 달러 유동성 부족이 심각합니다. 은행이 하도 달러가 부족하니까 한국은행이 직접 은행에 외환 현물을 팔고 선물을 사는 방식으로 단기 외환을 공급하는 중이긴 하지만, 이게 워낙 단기라 (길어야 세 달) 은행의 외환부족사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은행이 달러가 부족하니 하루짜리 달러 자금에도 연이자 7-8%를 지급하는 형편입니다 (얼마전 "기업이 달러로 이자놀이 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 실상은 은행이 달러가 부족해 단기 달러 자금에 대한 이자를 워낙 높게 주니까 기업들이 좋은 조건을 찾아 하루 단위로 은행을 바꿔가며 예금을 한 것입니다.

     

    즉, 문제의 핵심은 기업의 이기심이 아니라 은행의 달러부족이지요.


    또한 외국인들은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많은 채권과 주식을 샀는데, 세계적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위험자산 회피 움직임이 발생하며 대량으로 주식과 채권을 팔고 빠져나가는 중입니다. 만약 이들의 셀 코리아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의 달러 부족 현상은 결국 파국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외국인의 이탈은 단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막기가 힘듭니다. 이들을 붙잡는 한가지 방법은 높은 이자를 주는 것인데, 어제 기준금리 1%인하로 인해 외국인에게 한국은 위험하기만 하고, 이자소득도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나라로 찍히게 되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데는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은 제품을 파는데서 나오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대출을 통해 마련합니다.

     

    그런데 은행이 갑자기 "지금까지 빌려간 돈 다 갚으라"고 요구한다면, 기업은 제품을 잘 팔다가도 부도를 내게 됩니다. 이른바 흑자도산이지요. 한국도 경제를 운영하는데 무역을 통한 이득 뿐 아니라 외국에서 빌려오는 자금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외국인에게 빌려온 돈과, 외국인이 직접 한국에 투자한 돈이 동시에 빠져나가면서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는 중입니다. 이제 한국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민간은행이 없기에 한국 정부는 외국 정부에게 직접 돈을 빌리는 단계이지요. 따라서 주변국에게 몇백억 달러 빌렸다고 좋아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성급해 보입니다.


    한국은 지금 쌓아놓은 외환보유고를 곶감 빼먹듯 조금씩 써가는 중입니다. 이 돈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풀려 한국이 다시 외국에서 쉽게 돈을 빌려오거나, 아니면 수출이 엄청나게 잘 되 돈을 빌릴 필요 없이 우리가 보유한 달러로 빚을 값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파국은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이 어떻게 떠들던, 통화 스와프는 사태의 본질을 바꾸어 놓지 못할 것입니다.